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요미스테리 극장/에피소드 (문단 편집) === 꽃잎 (17회) === 당시 신규 임용된 [[초등학교]] 교사였던 제보자가 조언을 구할 겸 인사차 초등학교(방영 당시는 국민학교) 시절의 은사를 찾아가서 은사가 30년 전에 겪은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에피소드가 시작된다. 1960년대 중후반 신임 교사로 [[충청남도]] 웅천[* 현재의 [[보령시]] 웅천읍.]의 바닷가 마을에 자리잡은 학교에 부임한 선생님은 3학년 담임을 맡게 된다. 당시 선생님이 맡은 반에는 만수라는 이름의 문제아가 있었는데, 어머니를 여의고 [[한센병]][* 당시에는 나병으로 불렸다.] 환자인 아버지와 단 둘이서 가난하게 사는 소년이었다. 이런 가정 환경 때문에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만수는 늘 심한 장난[* 같은 반 여자아이의 [[도시락]] 안에 살아있는 [[개구리]]를 집어넣고 그 개구리를 코앞에 들이밀어서 울리는가 하면, 심지어 자신을 흉보는 아이들 앞에서 [[돼지]]의 생간을 먹는 엽기적인 행동까지 저질렀다.]을 일삼았고, 선생님은 만수네 집이 문제가 있는 가정이라고 지레짐작한데다[* 당시는 한센인에 대한 편견이 심각했기 때문에, 집안에 한센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덮어놓고 꺼려지던 시기였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만수 아버지가 밤마다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파서 간을 빼 먹고 아들인 만수에게도 먹인다"느니, "만수의 어머니를 아버지가 죽이고 시체를 집 마루 밑에 묻었다"느니 하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한편 선생님의 교무실 책상에는 언제부터인가 매일 [[꽃]]이 장식되기 시작했고, 그것도 매일 다른 꽃으로 바뀌고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이 꽃 덕분에 교무실이 환해졌다"며 호평했지만, 정작 누가 꽃을 가져다 놓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환경미화 심사를 앞두고 반 아이들과 선생님은 모두 교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꾸미는 데 힘썼다. 그리고 선생님은 교육의 일환으로 '우리 엄마, 아빠'라는 주제로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뒤 아이들의 그림을 교실 뒤 벽에 붙여 두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새겨 보자는 의도였지만, 가정 환경 탓에 부모님의 모습을 즐겁게 그릴 수 없었던 유일한 아이인 만수는 아이들에 대한 질투와 선생님에 대한 원망 탓이었는지 그 날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있다가 밤이 되자 교실 뒤에 붙은 반 아이들의 그림을 전부 찢어버렸다. 게다가 그림 사건 이후 교탁보를 사기 위해 걷어 둔 학급비가 없어지는 일이 발생하자 아이들의 의심의 눈초리가 일제히 만수에게 쏠리는데, 이에 만수는 "너희들 다 똑같은 것들이야!"라면서 원망하는 말을 남긴 채 교실을 뛰쳐나갔다. 만수의 태도에 화가 난 선생님은 만수를 교무실로 불러 야단쳤지만 소용 없었고… 그 후 학교는 여름방학에 들어가고 선생님도 만수에 대한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즈음 학교에서는 밤마다 어린 아이의 유령이 이곳저곳에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날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은, 학급비가 없어져서 사지 못했다던 교탁보가 새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여겨 반장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학급비를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깜빡 잊었다"는 것. 반장의 말에 선생님은 그간 잊고 있었던 만수의 일을 떠올렸지만, 만수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학급비 건으로 잘 알아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혼냈던 일이 속상해서 결석을 했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반장을 대표로 하여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만수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만수는 집에 없었고, 선생님과 아이들을 방 안으로 맞아들인 만수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선생님이 오셨다고 무척 좋아했을 거예요"라며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놀라는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만수 아버지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마지막으로 학교에 다녀온 날 밤, 만수는 비가 세차게 오는 와중에 산에 가겠다며 다 찢어진 비닐 [[우산]] 하나만 쓴 채 집을 나섰다고 한다. 만수는 산에서 혼자 작은 꽃밭을 가꾸고 있었는데, 이 꽃들이 다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꽃을 돌봐야 한다며 아버지의 만류도 뿌리치고 나갔다가 빗길에 발이 미끄러지면서 낭떠러지로 추락사한 것.[* 학교에서 돌아온 만수의 양 볼이 퉁퉁 붓고 멍이 들어 있었는데, 정황상 수업이 끝나고 꽃밭에 들렀다 오는 길에 넘어졌거나, 반 아이들과 다투는 와중에 다친 것으로 보인다.] 그 꽃들은 생전에 선생님을 좋아했던 만수가 교무실 책상에 놓아 두기 위해 가꾸던 것으로, 항상 선생님이 출근하기 전에 서둘러 학교에 가서 꽃을 장식해 두었다는 것이다. 또한 만수는 평소 아버지에게 "반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말로는 2살 때 어머니가 [[산모사망|동생을 낳다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극중에서 동생이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동생도 사산된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의 정을 받지 못한 채 자랐고, 그 때문에 애정표현이 서툴렀을 것이라고. 모든 사정을 알게 된 선생님과 아이들은 그 동안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만수를 나쁜 아이라고 오해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에 조용히 눈물을 흘렸고, 만수가 생전에 가꾸었다는 산 속 꽃밭을 찾아갔다. 이 꽃밭에 심어진 꽃들에는 하나하나 반 아이들의 이름과 선생님의 이름이 붙어 있었고, 심지어 꽃들이 심어진 순서도 반 아이들이 교실에서 앉는 자리 배치 그대로였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만수의 꽃들을 산 속 꽃밭 모습 그대로 학교 화단에 옮겨 심고 정성스레 가꾸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밤이었다. 그 날은 태풍으로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기 때문에 반 아이들과 선생님은 행여나 꽃밭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음 날 아침 불안한 마음으로 등교한 아이들과 선생님은 태풍으로 엉망이 된 화단에서 유일하게 무사한 꽃밭을 보고 환호했다. 화단 옆 나무 위에는 전날 태풍 때문에 떨어진 '방첩' 간판이 걸려 있었는데, 만수네 반 꽃밭 바로 위쪽이었다. 이 모습을 본 선생님은 '죽은 만수의 영혼이 꽃밭을 비바람에서 지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끝낸 은사는 제보자에게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자신처럼 못난 스승이 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낡은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마른 꽃잎 한 장을 건네주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